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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주사(哭呪士)를 아십니까?

竹淸 2020. 11. 6. 16:22

곡주사(哭呪士)를 아십니까
반월당 삼성생명 빌딩 북쪽 골목에 곡주사란 허름한 간판의 식당이 있다. 그 의미가 자못 의미심장하다. ‘유신을 저주하며 통곡하는 대학생(士)들이 모이는 곳’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집 주모 정옥순 여사 시절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다. 상주에서 5남매 교육을 위해 대구로 올라와 자그만 식당을 운영하며 당시 유신반대 데모를 하다 쫓기는 대학생들을 이층 다락방에 숨겨주고 허기를 채워주었단 곳이 바로 곡주사다.
태종학 대구시장 시절(?),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대구에 오면 수성관광호텔 203호에 묵었다. 하루는 곡주사가 데모학생들의 집결지요, 피신처라는 소문을 듣고 달랑 비서관 한 명만 대동하고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당연히 정옥순 여사는 박대통령을 알아볼 리 없었다.
박대통령이 시치미를 떼고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주모, 여기에 오는 손님들이 박대통령이 일을 잘한다고 하던가요?’ 주모 왈 ‘일은 많이 했는데 과욕이 많아. 계속 집권하면 명대로 못산다.’고 하였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은가요?’ 주모 왈 ‘이제 그만 해먹어야지. 영남대나 맡아 운영하면 되지.’ 뭐 이런 얘기가 오갔다고 한다. 그런데 태종학 시장은 11대 시장으로 66년부터 69년까지 임기였으니 유신시대는 아니며, 만일 위 일화가 유신시대라면 시장이 다른 분이었을 것이다.

데모하던 학생이 재판을 받는 날, 정여사는 단골손님(?)을 위해 방청을 했고 혹시 자기를 알아보지 못할까하여 빨간 손수건을 흔들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지 않아도 요주의 인물로 지목되어 있는데 금기시하던 빨간 손수건까지 흔들어댔으니 형사들의 눈초리는 더욱 분주해 지지 않을 수 없었다. 막걸리로 억눌린 감정을 풀었던 어는 대학생은 술값으로 결혼시계를 잡혀두기도 했다고 하는데 중구청에서 간행한 생애사 중에 정옥순여사분도 있다고 하니 이걸 구해 읽어보면 더욱 깊이 알 수 있으리라.

영남일보 2000년 7월 어느 날 기사와 <대구여성>아라는 잡지의 기사를 읽어봐도 위 이야기는 없다. 위 기사는 코팅을 해서 지금도 곡주사에 보관하고 있었다. 한 소박한 서민의 삶을 이어가면서 데모하다 쫓기는 아들같은 젊은이들을 숨겨주고 밥먹여 주고 막걸리 한 사발을 따라주던 인정많은 정여사도 살아있다면 82세다. 당시 이집에서 신세를 졌던 젊은이들이 모여 이곳에 문화원을 설립한다는 뜻을 가졌다고 신문기사는 전하고 있지만 14년이 흘러도 문화원은커녕 주인만 바뀌고 실비로 밥과 국수, 막걸리와 안주 등을 파는 전통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반월당 부근에서 막걸리 한 사발과 가벼운 식사를 할 생각이 있다면 한 번쯤 들러 그 시절 대학생들의 고뇌와 좌절을 되새겨보는 기회로 삼아도 결코 헛된 일은 아닐 것이다.

[출처] 곡주사를 아십니까 |작성자 주윤 jooyun